자료집

30여년, 풍부한 현장의 노하우를 전해드립니다.

총감독으로 참여하면서의 멘토글

*등록일 : 2022-04-12 *조회수 : 332회

 

1. 대관령 눈꽃 축제를 총감독하면서

 

문화관광부 지정축제인 때 대관령 눈꽃축제를 총감독하였다. 이때는 축제들에게서 허수가 많은 시기였다. 아직도 허수가 많이 존재하지만 이젠 허수를 빼고 평가를 하면서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본다. 대관령눈꽃축제는 ‘하늘아래 첫 동네’ 란 의미로서 산골축제를 지향하는 축제이다.

또한 용평리조트 입구에서 행사를 진행하면서 용평리조트를 찾는 관광객을 유입하기위한 방법으로 운영되고는 하였다. 2000년에는 눈이 오지 않아 참으로 눈꽃축제를 이끌어가기 힘든 축제였다고 본다. 

축제 위원회와 태백은 1천5백만원에 가수 15팀과 TV방송, 대관령눈꽃축제에서는 1천만원에 SBS Radio 공개방송으로, 국내 톱 가수 15팀 정도를 섭외하여 방송을 치루어 졌다.

하늘하늘 첫 동네인 횡계, 눈이 많이 온다던 횡계 였지만 눈은 오지 않고 날씨는 춥고 힘찬 바람만 불며 그렇게 흘러갔던 대관령 눈꽃축제였다.

 

2. 횡성 내포문화축제를 총감독하면서

 

홍성내포축제 또한 나하고는 참으로 사연이 많은 축제였다고 본다.

그동안 추진위원회가 있었지만 거의 관에서 주도적으로 진행을 하였고 2008년도에는 민간조직으로 모든 돈과 업무를 이양하고 관리만 하였다. 그때 축제 팀장과 남직원 여직원을 채용하였던 것으로 알고 있다. 3사람이 실질적으로 축제를 모두 이끌어가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봐야 했다. 행정적인 업무에 있어서 축제계가 축제를 운영한다면 계장1명 또는 소속계원 3~6명, 나아가서 과 직원, 더 나아가서 타과 부서의 협조체제에서 지원을 받게 된다. 예산 또한 축제예산이 아니라 타계나 타과의 예산의 집행에 있어 공연 및 시설물에 대하여 합리적으로 지원을 받을 수가 있다. 그러나 민간조직으로 넘어가면서 추가예산과 공무원의 지원 받기는 어려워진다.

이러한 상황이 초래될 것을 예상하여 관과 축제 추진위원장이 총감독과 연출팀을 선정하여 지원했지만 기획단에서 말하길, “팀장은 내가 모두 할 수가 있는데 왜 연출팀이 오느냐”는 반응으로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기획단의 3명은 행정적으로 지원해 주기도 바쁜 인력이다. 연출팀이 작품을 잘 만들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것이 역할이라고 본다. 욕심은 좋은나 나의 욕심으로서 전체를 망가트리고 결국은 실패의 축제로서 비생산적인 축제를 만들고 지역경제에 해를 끼침으로서 손실을 준다.

축제를 기획함에 있어 총감독과 연출팀을 합해 총 6명이상이 투입됩니다. 개막식을 함에 있어 총감독은 콘솔에, 음향 스탭 1명, 사회자 전담 스탭 1명,, 무대상, 하수 각1명씩 2명, 무대 앞의 전 1명, 출연진체크 2명 등의 스탭이 기본적으로 투입이 된다. 인원이 작을 때는 한사람이 몇 가지 일을 동시에 해나가며 의기투합한다.

진행과 연출은 틀리다. 기획단에서 기본, 구성을 하고 그냥 알아서 하라는 방식의 진행은 연출이 아니다. 진행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지만 연출은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사전에 기획, 구성을 하고 운영 메뉴얼 및 Cue-Sheet, 시나라오 작성, 요소에 맞는 음악편집과 사전미팅과 리허설을 통하여 숙지되고 각 요소에 배치된 연출 스탭과 조명, 음향, 특수 효과, 중계 팀, 영상 팀 등과 조화로운 연출을 통하여 작품이 탄생되는 것이다. 아무 개념 없이 비전문가인 운영과나 단체에게 넘겨주는 것은 연출이 아니다 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마인드와 작품은 환영받지 못하고 외면당하는 축제가 될 것이다.

대한민국 축제를 이끌어가는 관이나 민간인의 기획단 여러분! 몇 명이서 축제를 이끌어 갈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진행이요. 연출이 아니라 구성하여 과나 단체에게 떠넘기는 행위 일뿐 입니다. 그러한 것들은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관광객의 눈높이를 절대로 맞출 수가 없으면 질적인 문제에 있어 한계점을 가질 것 입니다. 이젠 행정의 뒷받침인 기획단과 전문연출팀을 구분하여 작품을 만들어주시기 바랍니다.

 

3. 보은 대추 축제를 총감독 하면서

 

내게는 사연이 많은 축제라고 볼 수가 있다. 2008년 6월 입찰을 통하여 기획사가 선정되었으나 여러 가지의 여건사항으로 2008년 8월 포기각서를 쓴 상태로 군에서 만들어놓은 기본 데이터로 전차입찰을 보게 되었다. 약 3억8천만 원 중 숫자놀음의 전자입찰에서 최저가가 선정되는 과정이었다. 기본 액수는 있지만 입찰평준가는 아무도 모른다. 저가 입찰이라 하니 모두가 한참 미달되는 금액을 작성하여 모두 자격미달이 되었고 최고가로 작성하여 제출한 폐사만이 자격권이 주어줘 선정 되었다.

시내가 아니고 약 10KM 떨어져 있는 곳에서 진행되는 대추축제에 대하여 지역민, 공무원분들 등 모두가 회의적이었다고 본다. 입찰에 선정되어 3억6천정도의 예산을 맞추어 진행되는 과정에서 내용을 보니 축제전문가 입장에서 너무나 허술하고, 이러한 내용으로는 관광객의 만족도를 줄 수가 없을 것 같아 예산 내에서 재 조울 하여도 된다는 허락하에 재정리를 했다. 어떻게 보면 기획,연출을 합법화에만 맞추고 수익을 모두 챙겨 갈 수도 있었으나 장인의 작품연출가로서의 자존심이 허락 되지 않았다. 그리하여 무대 하나를 둘로 공연팀을 더 많은 팀으로 부족한 체험행사를 더 많이 유치하여 채워나갔고 짜임새 있는 연출로 이끌어갔다. 많은 관광객의 입소문에 의하여 기대치 이상으로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였고 소위 대박을 터트렸다는 평가를 들어 자부와 긍지심을 갖게 하였던 축제였다.

 

4. 단풍 부부사랑 축제를 총감독 하면서

 

내장산 단풍 부부사랑축제는 내장산의 단풍과 남편을 사모하다 돌아가신 부인상을 소재로 부인상을 기리기 위한 주제을 가지고 축제를 진행한다. 민간조직에서는 다른 총감독을 선정하고자 하였으나 시에서는 총감독만큼은 풍부한 노하우가 있고 능력 있는 자가 총감독이 되어야 한다고 강한 주장을 통하여 我에게 총감독의 기회가 왔던 것으로 알고 있다.

축제를 이끌어 가시는 정읍분들 하면 모두가 친절하고 정이 넘친다. 하지만 축제를 함에 있어 어느 지자체나 마찬가지이지만 좀 더 개혁적이고 창조성을 가지며 장인정신으로 임하며 축제를 기획, 구성하여 갔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이럴 때 정읍에도 새로운 축제상품이 탄생 할 것이라고 본다.

 

5. 무안 백련 축제를 총감독하면서

 

서울에서 무 연고지인 무안까지 가서 총감독체제를 도입 시키고 종합 연출 대행건을 수주하여 운영했다. 이때가 문화관광부지정축제로서 자리매김하고 있을 때였다.

10만 여평에 이루는 연꽃단지 무안은 매년 조금씩 시설물을 확장하여 축제장을 조성하여 가고 있었다. 여름에 열리는 백련축제가 주간보다는 저녁6시때면 주변의 관광객이 모여들기 시작하여 축제장이 인산인해를 이루곤 하였다. 단지 흠이라면 들어오는 입구가 좁아 붐비는 시간때엔 들어오는 데만 몇 시간 걸린다는 것이다. 그러나 매년 논을 임대하여 주차장을 늘려가는 노력에는 앞서가는 분위기를 볼 수가 있다. 하지만 매년 사전 예산이 책정되지 않아 추경예산을 세워 추진하는 모습에 대하여서는 성공적인 축제를 위해서는 한계성이 있다고 본다.

지금은 ‘무안백련축제’에서 ‘대한민국 연 박람회’로 명칭이 바뀐 것으로 알고 있다. 이 명칭 또한 매년 바뀌어 정체성을 잃고 있으며, 생산적인 축제로 만들어가기 어렵다. 관광객 또한 혼돈 속에서 관람을 하게 될 것이라고 본다.

 

6. 태백산 눈 축제를 총감독 하면서

 

1. 태백산 눈 축제를 맡게 된 계기

 

나는 90년대 중반에는 스포츠의 개막 쇼, 올스타전등 공중파 TV 빅쇼를 현장에서 진두지휘하며 연출하였기에 방송에서 강하다. 또한 TV, RADIO등 공개방송 전문 대행사를 하였기에 방송의 흐름에 강했다.

태백의 눈 축제 때문에 방문을 하니 B급 가수 4백만원씩 3팀으로 개막 축하쇼를 하고자 준비하고 있었다. 3팀 합치면 1천2백만원인데, 3백만원 더 쓰면 가수 15팀과 TV녹화방송과 TV 예고파트 30회를 하여준다고 제안을 하며 태백의 눈 축제를 수주하여 왔던 기억이 있다.

 

2. 태백산 눈 축제의 발전 방향

 

나는 하얼빈의 빙설과, 빙등제에 관련 분들을 컨설팅하고 있었다. 또한 ‘태백 눈 축제’를 컨설팅과 심사위원으로 활동 하면서 2010년의 눈 축제에 앞서 하얼빈의 빙설제와 빙등제에 축제와 관련된 분들을 모시고 다녀왔다. . 한국의 좁은 지역에서 최고라고 생각하며 자부심이 강하였던분들인데 중국의 빙설과 빙등제의 대형작품을 보면서 입을 벌렸다. 이 답사가 벤치 마케팅하면서 시야를 넓혀 주었던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태백의 눈 작품은 약 6M X 약 40M 크기의 작품이라고 보면 중국의 작품은 약40M X 약 200M의 작품으로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빙등 또한 높이 40여M와 넓이 몇백M로 구성된 작품들이 즐비하다. 쑹화강에서 무한대로 채취하여 얼음조각 작품을 만들고 있는 눈과 얼음 조각의 도시가 형성되어 있는 곳이 하얼빈이라고 본다.

중국의 눈은 다져가며 쌓는 방법으로 운영되고 있었지만 태백은 눈을 쌓고 구멍에 물 눈으로 채워나가는 방식으로 운영되었던 것이 현실이었다. 날씨의 기온차가 있긴 하지만 눈 쌓은 방법에 따라 아름다움의 차이가 생기는 것이다. 2011년도에는 현실적인 방법을 터득하였기에 새로운 작품이 나오리라 기대를 한다.

 

7. 영동 난계 국악 축제를 총감독하면서

 

대한민국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갔던 2002년 월드컵 이벤트를 영동군과 함께 하고. 8년만에 다시금 인연을 맺었다. 2000년도부터 무주반딧불축제를 매년 총감독을 하고 있을 때 매년 옆동네 난계국악축제를 이끌어가고 있는 공무원분들이 다녀와서 함께 하고 싶어 했다.

대한민국에서는 인물축제가 몇 군데 있다. 그러나 어딜 가나 한계성에 부딪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영암 왕인박사을 모티브로한 ‘영암왕인문화축제’나 이순신장군을 모티브로한 ‘이순신축제’나 춘향이를 모티브로한 ‘춘향제’등 모두 어려움을 가지고 가는 축제라고 볼 수가 있다. 그나마 ‘영동난계국악축제’은 악기와 연관된 음악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좀더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보지만 국악이란 면에서 젊은 층의 외면을 받고 있는게 현실이다. 이러한 모든 어려움을 딛고 성공한 축제로 가고자 한다면 현실적인 조직구성과 국제화에 맞추어 퀄리티를 높일 때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고 생산적인 축제롤 만들어 갈수가 있을 것이라고 본다.

 

8. 괴산 청결 고추 축제를 총감독하면서

 

전국에 많은 고추 생산지가 있지만 괴산 청결 고추 축제를 이끌어가는 분들에게서 앞서가는 이벤트 마인드가 있었기에 ‘괴산청결고추축제’가 문화체육관광부지정축제까지 올라 갈수가 있었다고 본다.

괴산고추축제가 지금은 관광과 축제팀에서 기획을 하고 있지만 예전에는 유통센터에서 기획을 했다. 옆동네 음성에서는 지역축제로서 한계성을 가지고 운영되었지만 괴산은 전국 축제로서 자리매김한 시절이 있었다. 유통센터에 방문하여 함께 상추 등을 뽑아 꽁보리밥과 함께 상추에 쌈을 싸먹기도 했다. 폐사에서 참여하여 컨설팅을 하면서 시야를 넓게 해주었고, 또한 문화체육관광부지정축제에 선정되기까지 많은 일조를 했다는 자부심과 뿌듯함이 밀려 오기도 한다. 고추 축제 개막식의 식전 행사로 괴산군민 5만명이 밥을 지을 수 있다는 대형 솥의 제막식과 나눔의 이벤트행사에서는 더없는 줄거움을 주었던 같다.

지금은 지역방송사와 조인하여 운영하다 보니 지역 축제로 전락되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으로 보인다. 전국의 축제로서 전국의 관광객과 소비자를 유치하려면 지역방송사가 아니라 넓게 보고 능력 있는 기획사를 선정하여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축제에서는 먼저 즐거움이 있어야 한다. 무더운 여름에 둔치에서 이루어지는 만큼 물놀이와 연계된 상품으로서 정체성을 찾아간다면 옛날의 향수를 다시금 누릴수 있는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본다.

 

9. 순창 장류 축제를 총감독 하면서

 

순창 하면 고추장을 연상시킨다. 난 미스코리아 및 지역의 미인선발대회의 기획, 연출을 많이 했다. 1990년대 후반에는 미스순창 고추장 아가씨 선발대회를 기획, 연출 하기도 했다.

2007년도에는 제1회 ‘순창장류 축제’가 새로 탄생되는 시점이었다.

하동야생차문화축제 총감독시절 미팅을 하고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순창에 18시 넘어 도착하게 되어 축제담당자를 5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보았다. 그 후로 몇 번 연락이 와서 총감독 체제에 질문을 하고, 군수님과 미팅을 갖고 총 감독을 하게 되었다. 축제팀장이 군수에게 보고 하길 “축제를 만드는데 있어 첫해인 만큼 풍부한 노하우가 있는 총감독을 선임하여 같이 만들어가야지, 행정적인 공무원들만으로는 성공적인 축제를 만드는 데에 있어 한계성이 있다” 고 설득을 하셨다는 말을 들었다.

축제장이 외져 있지만 많은 관광객의 유입으로 문화체육관광부지정축제로서 자리매김하여 가고 있다. 더욱더 성숙되고 생산적인 축제로 가고자 한다면 관광객과 소비자의 가슴에 와 닿는 체험행사와 국제화에 맞추어 기획, 연출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론적인 컨설팅도 중요하지만 현실적이고 현장의 노하우를 추구하며 개혁적인 변화의 바람이 있어야 생산적인 축제로서 성과를 올리고 자리 매김 할 것이라고 본다.

 

10. 풍기 인삼 축제를 하면서

 

영주는 소백산에서 흐르는 계곡물의 그 운치가 참으로 아름답다. 온천을 하고 맑은 계곡 물속에 발을 담그고 감상에 젖다보면 황홀하기 그지없다.

내가 풍기인삼축제에 총감독으로 참여하게 된 계기는 지금생각해도 아이러니 하다.

축제와 관련하여 축제담당을 찾아가면 대화가 통화지 않았던 시대였다. 자체적인 준비와 지역방송사와 밀착된 축제로 진행되었기에 포기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보령머드축제를 총감독하고 있었다. 축제담당계장이 보령머드축제에 벤치 마케팅하러 왔다가 총감독체제에대한 이해를 하고 풍기 인삼축제 담당계장이 찾아와 총감독체제로 의탁하고 싶다는 것 이었다. 하지만 공연비, 시스템비 등은 책정되었어도 총감독 및 종합 연출료는 책정이 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었고, 2개월의 협상 끝에 결국은 도와주기로 했다.

풍기하면 소백산 줄기에서 이루어지는 온천과 부석사, 선비촌 등 관광지와 사과 등의 특산물을 가지고 있다. 인삼하면 금산은 유통지로서, 풍기는 인삼의 질로서 유명하다.

축제는 지역축제와 관광축제로 분리 될 수가 있다. 지역축제는 지역방송과 지역민의 화합의 축제로서 함께 갈수가 있지만 관광축제로 가고자 하며 지역방송사와 함께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할 수 있다. 관광축제로 가고자 한다면 관광축제 전문가의 컨설팅 속에 전국을 상대로 한 이벤트 및 홍보 전략을 세워 컨설팅을 받으며 함께 만들어 가는 축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 풍기인삼축제는 지역방송사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전문성이 결여된 지역방송사와 함께 할 때까지는 관광축제로의 도약은 힘들 것이라고 본다. 풍기인삼축제는 풍기역과 역의 앞 광장, 상가, 둔치 모두를 축제장으로서 구성할 때 축제다운 축제를 만들어 갈수가 있을 것이라고 본다. 또한 민간단체와 행정조직과 조건 없이 생산적인 축제를 위하여 머리를 맞대어 기획, 연출할 때 관광축제로서 발돋움하고 다시 찾고 싶은 축제로 만들어 갈수가 있을 것이라고 본다.

 

11. 강경 젓갈 축제를 총감독하면서

 

‘논산’하면 ‘병역훈련소’가 연상된다. ‘강경’하면 그 옛 날 논산의 중심지였고 강경포구가 포구로서 한시대를 이끌러갔던 때가 있었다. 포구의 인연으로서 강경젓갈이 유명세를 타고 지금까지 전해져 오고 있다.

내가 ‘강경젓살축제’에 참여하기 전에는 사람 죽는 축제로서 많은 매스컴의 주목을 받았다.

축제팀장이 말하길.....

마라톤하다 죽고, 뗏목 타다 죽고. 경찰서에 왔다갔다하다보니 축제가 끝났더라고.... 그리곤 하신 말씀이

“정신없이 축제가 지나가던데 총감독이 필요한 것 같다. 도와주라, 현재는 감독료가 없는데 책정이 안되면 내 자비라도 내놓아 책정하여주겠다;”

하던 열정을 보면서 나를 참여 시켰다.

처음에는 총감독으로 참여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체제의 도입으로 생길 마찰을 감안하여 자문위원의 명목으로 전체의 미팅에 참가하였다. 그러면서 점차 룰을 바꾸어 나가며 총감독이란 명칭을 거부감 없이 사용 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능력으로 종합연출 및 총감독을 할 때, 시스템 시설 장치는 어떠한 라인으로 참여하여 함께 진행하게 되었다.

하지만 몇 년 동안 축제를 총감독하면서도 총 감독과 시스템업체와 매년 싸우는 상황이 생겼다. 안하무인겪인 업체, 축제장의 운영본부에서 축제 담당자인 공무원이 이유없이 맞고 있는 상황이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와서 패는데 말리는 사람이 없는 거였다. 이유인즉 시스템을 맡은 사장의 동생이 와서 공무원을 때리고 있는 것이었다. 왜 반항하지 못하고 맞기만 하느냐고 물의니 동네의 선후배 관계라 그렇다는 말을 들었다. 참으로 아이러니 한 상황이라고 본다. 의협심에서 말리던 내가 싸움에 휘말리게 되었다, 행사장의 현장에서는 자고 일어나면 축제 담당자들도 모르는 사건들이 새로 생겨 업무가 다른 방향으로 추진되는 상황이 만들어 졌다. 시스템업체와 단체장간에 밤의 미팅에서 새롭게 생기는 일들이 생기는 것이었다. 실수의 연발인 업체, 기본 마인드가 되어 있지않은 업체. 신경좀써서 실수좀하지 말라고 한말에 답변은 뭘 그렇게 신경쓰냐 대충하지. 이러한 일들로 빈번하게 부딪히게 되어 결국에는 몇 년동안 애착을 갖고 연출하던 ‘논산강경젓갈축제’를 지역 이벤트사에 넘겨주고 물러나게 되었다.

그래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자부심이라는 것으로 위안을 삼고 있다.

내가 참여하기전에는 운영미숙으로 사람이 사망하거나, 관광객이 없어 식당, 부수에 신청자가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타성에 젖어 작년의 답습으로 운영하고자 하였던 기획단과 조직체를 개혁적인 추구로 관광객이 인산인해를 누리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 해 역시 장사가 잘되어 부수 접수를 컷트 하기 바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현재는 지역업체가 새로운 개발을 하지 못하여 정체성에 빠져 어렵게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축제는 말이나 이론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풍부한 노하우와 장인정신의 마인드가 있는 분들이 총감독을 하였을 때 성공적인 축제로 만들어 갈수가 있을 것이다.

 

12. 문경 전통 찻사발 축제를 총감독 하면서

 

문화체육관광부 지정축제라는 타이틀을 만든 것은 한국의 축제도 국제적인 축제로 육성하여 외국인을 유치하여 오자는 취지였다고 본다. 외국인은 한국의 무엇을 보고자 할까? 라는 다소 포괄적 질문을 던졌을 때, 성향에 따른 생각차이는 있지만 가장 먼저 한국의 전통문화를 보고자 할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 지정축제중 외국인에게 상품의 가치를 줄 수 있는축제는 어떠한 축제들일까?

‘문경 전통 찻사발 축제는 한국의 전통문화를 엿보게 하여 줄 수 있는 상품들로서

외국인에게 맞춤형의 축제로 만들어 줄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어 있다고 본다.

문경은 옛날부터 삼국시대엔 격전지로 고려, 조선시대에는 지리적인 교통요지로서 문경새재가 함께하였다. 또한 군사요충지로서 협곡이 있고 1관문, 2관문, 3관문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으며 전통과 어울리는 대왕세종세트장이 있어 왕건, 대왕세종 등 대한민국의 사극 촬영은 문경세트장에서 거의 이루어지고 있다고 봐도 과언은 아니다. 한때는 문경탄광으로서 활기를 찾은 문경이었지만 탄광은 퇴색되었고 주흘산, 조령산, 온천, 레포츠 등 많은 관광 상품으로서 관광객이 4계절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는 곳이 바로 문경 새재라고 볼 수가 있다.

그동안 ‘문경 찻사발 축제’는 공무원들이 주축이 되어 도자기 전시관 광장에서 자체적으로 운영되어 왔다. 공무원들이 자체적으로 작지만 알차게 진행되어 왔기에 총감독이란 인식이 없었다. 여러 축제팀장들이 바뀌며 항상 총감독체제에서 인식을 하면서 하고 싶어 하였지만 분위기 형성에 있어 뒷 힘이 약하여 못하였다. 그러던 중 굳은 신념의 축제팀장이 결단을 내려 강한 추진력으로 총감독제도를 도입하고 장소를 문경새재 관문으로 옮기면서 소위 말하는 ‘대박을 터트렸다’라는 말을 실감하게끔 했다.

난 축제의 총감독을 하면서 예스맨은 아니다. 항상 개혁적인 추구를 한다. 그럼으로써 작은 마찰도 생기고 안티도 생긴다. 예스맨으로 연출한다면 축제의 변화는 생기지 않는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변화를 주어 결과로 인식을 시켜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감독이다. 문경새재로 옮기면서도 여러 가지의 마찰이 시작을 알렸다. 총감독으로 선정을 하였지만 총감독 타이틀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였던 사연이다. 이는 그동안 자체적으로만 하였던 행사에 감독이란 사람에 대한 이미지의 마찰과 반발이었기 때문이다. 책자에 총감독의 이름이 빠지는 상황이 초래되기도 했지만, 축제기간 10일만에 결과로써 총감독이란 타이틀을 다시 찾아오게 되었다. 이해의 부족과 불신에서 붉어졌던 총감독에 대한 비협조적인 관계에서 지금은 모두가 도와 함께 만들어가는 축제로 변하였다.

‘문경 전통 찻사발 축제’에서 인정받은 총감독이란 타이틀이 ‘문경오미자축제’, ‘문경사과축제’등 문경의 대형행사를 모두 컨설팅 및 총감독을 하게 되었다. 대한민국 최고의 장소에서 진행되고 있는 ‘문경 전통 찻사발 축제’과 대한민국 대표축제로서 세계속의 축제로 발돋움 하는데 그리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을 것으로 본다.

 

13. 하동야생차문화축제를 총감독하면서

 

‘하동’하면 ‘화개장터’나 ‘쌍계사’가 먼저 떠오른다. 하동하면 섬진강과 섬진강속의 솔밭등 자연과 어울린 관광지가 많다. 하동 야생 차문화 축제에 2004년도에는 대행사로 참여하여 전체를 진두지휘 했었다. 2006년도부터는 총감독제도를 도입하여 총감독으로서 진두 지휘하며 연출을 하였다.

그때만 해도 차하면 보성을 머리속에 상기시켰을때였다. 하동에서는 차가 나오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동야생차문화축제’를 총감독하고 동시에 ‘보성다향제’를 컨설팅하면서 느낀 것은 ‘하동야생차문화축제’는 축제를 이벤트화 시켜 독립적으로 진행을 하여 나간 반면, ‘보성다향제’는 자연적인 여건을 좋게 가지고 있음에도 변화를 주지 못해 보성차밭이 아닌 운동장에서 축제를 함으로서 관람객들에게 외면을 받는 축제가 되었다.

‘하동야생차문화축제’가 문화체육관광부 지정축제의 최우수축제로 도약할 때 ‘보성다향제’는

예비축제에서도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이는 단체장분들과 담당하시는 분들의 의지에서 엿볼수는 대목이었다고 본다.

‘하동야생차문화축제’는 작지만 색깔을 가지고 주변의 자연과 화개장터, 쌍계사의 풍치와 함께 운영된다. 그 결과 지금은 하동야생차하면 질적으로 상승한 차 맛으로 주가를 높이고 있다. 이젠 하동야생차도 대한민국이 아니라 일본, 중국으로 진출하여 세계 속 차의 축제로 도약 할 때라고 본다. 좀 더 시야와 마인드를 넓게 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14. 보령 머드 축제를 총감독 하면서

 

여름이면 누구나 바다를 찾고자 한다. 보령에서는 매년 대한민국 대표축제인 보령머드 축제를 개최하며, 기본인프라가 갖추어줘 있어 머드체험 위주로 진행된다.

보령머드축제하면 해외로도 많이 알려져 있고 그로 인해 많은 외국인들이 참여한다.

2003년도에 총감독을 할 때는 아침 10시부터 개장을 하였으나 머드 체험탕에 들어오는 한국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천진난만한 외국인들이 들어와 먼저 분위기를 잡아놓으면 그때부터 한국 사람들도 체험행사에 참여하는 스타일이었지만, 지금은 많은 변화가 있어 한국 사람들도 적극적으로 체험행사에 참여하여 함께 즐기는 축제가 되었다.

이처럼 외국인들의 긍적적 마인드로 인해 축제의 활기를 주는 경우도 있지만 반대로 축제의 진행에 있어서 문제가 되는 점도 많다. 한국 사람들은 외국인에게 친절하다. 아사아계보다는 아메리카쪽의 외국인에게 더욱 더 친절함을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외국인들에게 베푸는 과잉 친절과 너그러움이 문제가 생기곤 한다. 간혹 소수이지만 무대에서 공개방송을 진행하고 있는데 뛰어 올라오거나, 머드탕에 들어가서 즐기는 외국인들이 지나가는 사람에게 머드를 뿌려 단벌신사에게 낭패를 준다. 또한 지나가는 여자 분들을 번쩍 들어 머드탕에 집어넣는 것을 즐거움으로 안다.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분들은 낭패를 볼 수밖에 없다. 그들은 즐거움을 행동으로 표현하고자 한 행동이지만 연출하는 입장에서는 아찔 하는 광경이 연출되곤 한다.

외국인들에게 있어서 축제 중 맥주가 빠질 수가 없다. 피티병은 지저분해도 상해를 입히지는 않지만 병맥주는 다르다. 맥주를 마시다가 아무대나 버린 병맥주는 자칫하면 위험물로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들이 남을 배려하지 않고 이기주의를 보이는 상황들이 눈쌀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가 많이 생기곤 하였다.

보령머드축제 하면 성공적인 축제로서 많은 외국인이 방문하는 축제이다. 이젠 퀄리티를 높이고 대중적인 축제로 기획, 연출을 하여 한국을 벗어나 세계 적인 축제로 발돋움 하였으면 하는 바람을 가진다.

 

15. 무주 반딧불 축제를 총감독 하면서

 

문화체육관광부 지정축제 전문 총감독 박종부(我)는1986년에 이벤트에 입문하여 1989년 서울에서 (주)JB커뮤니케이션(구 부일기획)을 설립하여 방송일과 기업의 프로모션, 체육대회와 프로스포츠등의 방송연출을 주업무로 사업을 진행하다 음반제작의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진출하여 운영하던 도중 IMF의 관계와 맞물려 전국의 지방축제에 손을 대기 시작하였다. 본격적인 축제의 첫 사업 시발점인 무주를 방문하면서 김옥배 계장과의 인연을 계기로 현재 문화체육관광부지정축제의 총감독 1순위 프로필로서 활동을 하고 있다.

 

내가 무주 반딧불 축제 총감독을 시작으로 한 무주군과의 인연이 10여년이 지났다. 2000년, 2002년, 2003년, 2004년, 2005년, 20006년, 2008년 총감독을 하면서 무주반딧불축제 하면 바로 비엘컴 이란 수식어가 형성 되었다.

첫사업을 같이 하였던 김옥배 계장님하면 항상 소신을 가지고 연구를 하며 개혁적인 변화를 일구는 분으로 기억된다. 2000년 무주군의 반딧불축제를 시작으로 하여 2001년에는 축제뿐 아니라 무주에서 열린 전북도민체전 총감독을 하였다. 그때 처음으로 도민체전에 공개방송을 도입시켜 성사를 시킨 시기였다. 폐사는 1990년대 중반기에 KBS, MBC, SBS가 TV 농구, 배구, 씨름천하장사, 야구, 축구, 아이스하키 등의 개막쇼, 올스타전등의 생방송 현장 총감독 연출을 거의 독점적으로 하던 때라 방송에 있어서 새바람을 일으켰었다. 도민체전의 전야제에 녹화방송으로 6천만원 계획되어 있던 것을 방송사와 협상을 하여 4천만원에 녹화를 TV 생방송으로 연결하였고, 계획했던 금액의 1/3을 줄인 셈이니 이 한건으로 연출로 2천만원의 값어치는 하였다고 농담을 하기도 하였다..

무주의 반딧불축제하면 바로 비엘컴 박종부가 연상되었다. 비엘컴은 부분대행이 아니라 총감독을 하면서 주관부서와 기획단만이 아니라 관련된 전 부서를 찾아다니며 미팅을 하고 컨설팅하면서 연출을 하여 주었기에 절대적인 신임을 가지고 운영 되었다. 뜻하지 않게 비엘컴이 축제를 총감독하지 못한 해는 어떠한 사연으로 타 기획사로 넘어간 것이었다. 타기획사에서 진행하면서 무질서한 진행과 비엘컴과 업무상황과 마인드가 많이 틀린관계로 기획사와 기획단과의 마찰이나 많이 생기면서 그때마다 비엘컴은 ‘구관이 명관’ 이란 멘트로 항상 돋보이게 되었다.

지금도 무주군에 가면 항상 축제 때문에 왔냐하는 질문을 한다. 10여년 동안을 준공식 등 크고 작은 행사들을 전 부서와 같이 미팅하며 진행을 하다 보니 담당자분들이 승진하여 계장, 과장, 면장님들 모르는 사람들이 거의 없는 같다.

지금은 태권도 성지로서 태권도 공원을 유치하여 짓고 있지만 태권도공원유치를 위하여 항상 같이 움직이며 이벤트를 진행하였던 날들, 동계올림픽유치를 위하여 군수님과 무주에서 춘천까지 걸어가며 이벤트를 진행하였던 날들, 참으로 절대 신임으로 많은 추억을 가진 무주군이었다. 축제분야에서 나를 인정해주고 키워 준 무주 반딧불축제 제2의 고향같이 아늑함을 주었던 무주군 앞으로도 초심으로 돌아가 무주와 함께하고자 한다.